유즈루... 기묘한 행사라니까요, 도대체 이런걸 기획한 사람이 누구인지... 그치만 파트너도 생긴 입장에 마냥 내뺄 순 없겠죠. 저흰 학생에게 모범을 보여야하는 입장이니, 그래요. 우선 쉬운 것부터 할까요? 비밀 말하기 정도는 무난한 것 같은데 어떠세요?
커플게임 체크리스트1. 여보, 허니 같은 애칭쓰기
2. 비밀 한가지씩 말하기
3. 손깍지끼고 벽쿵하기
4. 상대 무릎에 앉기
5. 입술 빼고 입맞추기
센(목록을 내려다보는 시선이 무겁다. 글자로 인쇄된 몇 가지 단어들이 시야에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미세한 불편함이 목덜미를 타고 내려왔다. 손끝이 느리게 목록을 짚으며 한 가지 항목 위에 머물렀다.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작고 예리하게 귓가를 울린다.) ...이왕이면 한 번에 두 가지를 처리하는 게 효율적이겠어. (입술을 열기 전, 미묘한 침묵이 맴돈다. 입 안에서 조용히 머무는 단어 하나가 낯설어 잠시 망설였다. 꾹 다문 입술, 고민하듯 혀끝으로 제 입천장만 꾹... 문지르다 이어 낮게 내려앉은 목소리를 뱉어낸다.) ...유즈루. (말끝으로 짧은 정적이 내려앉는다. 스스로도 이상할 정도로 영 낯간지럽다. 그의 혀끝이 한 번 미세하게 움직이고, 금방 제자리에 멈춘다. 처음 써보는 이름은 제 입술에 영 익숙하지가 않다. 목덜미로부터 뻐근한 감각이 천천히 올라와 귀 밑으로 퍼졌다. 손끝이 무의식적으로 넥타이를 매만지곤, 한 번 더 호흡을 고르며 천천히 너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시선이 네 얼굴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주의깊게 훑는다. 짙게 잠긴 적안, 표면적으론 쑥스럼 없는 태연한 무표정이다.) ...다른 사람들이 널 어떻게 봐줬으면 좋겠는지.
유즈루(학원의 사람 중에서도 제일 오랫동안 함께 지냈던 학생회의 사람인데, 이름으로 불렸다는 것 자체로 어색한 공기가 느껴졌다. 차라리 일반 학생이면 좀 나았을 텐데. 학생회…… 게다가 회장과 이런 미션을 수행해야한다는 건, 제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괜히 제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미션 목록을 힐끗… 훑었다. 한 번에 두 가지를 처리하는 거라면…… 음, 아마 이거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일 거라 짐작한다. 무거운 공기, 여전히 웃고 있는 얼굴을 유지하며 다음으로 내뱉어야 할 단어를 고른다.) …… 호칭은, 여보가 좋을까요 허니가 좋을까요. (…… 아니면 당신이나 달링도 있어요. 이름으로만 부르는 건, 기준치에 좀… 안 맞지 않나. 꽤 진중한 목소리다. 읊조리는 말 틈으로 저를 바라보는 석류알 같은 적안이 눈에 들어왔다. 귓가에 내려앉는 네 음성에 고개 끄덕이며 경청하다가……) …… 하하, 뭐야… (묘하게 힘 풀린 웃음소리. 반복적으로 제 머리카락을 만지던 손이 멈춘다.) 어떻게 비치길 바라냐, 는… 질문인가요. (……) 글쎄요… 저는 아버지가 바라는 방향으로 지낼 뿐이지, 제 스스로가 뭔갈 바라며 행동하는 편은 아니라서요. (스스로도 능동적인 사람보다는 수동적인, 타인이 지탱해 주지 않으면 쉽게 무너지는 사람임을 알고 있었다. 지금껏 그렇게 지내왔으니… 그밖에 생각이 안 나는 거에 가깝지만 말이다. 어쩐지 상념에 잠긴 눈동자, 살짝 다문 입새로 흘러나오던 말이 끊겨, 간극을 만들었다.) …….. 아마, 결론적으론 좋은 사람… 이지 않을까요. (…) … 평소에 이런 게 궁금하셨던 걸까요.
센(네 말이 끝난 뒤 잠시 침묵한다. 미세하게 가늘어진 눈매가 네 얼굴 위에 짧게 머물렀다. 천천히 벌어진 입술이 다시 닫히기를 반복하는 사이, 너를 향해 내뱉을 말을 고르듯 뜸이 길다) ...뭐, 호칭이야 뭐든 상관없겠지만. 굳이 골라야 한다면 여보 쪽이 나을지도 모르겠군. (별 의미 없는 선택처럼 말하지만, 말끝에서 기이하게 어색한 감이 묻어났다. 느릿한 호흡 사이로 말을 이었다.) .... 좋은 사람, 이라... 꽤 모범적인 대답이야. (말끝에서 희미한 웃음기가 스쳤다. 표정에서 웃음을 찾을 순 없었지만, 적어도 마냥 날카롭지만은 않았다.) 궁금했다는 표현이 정확할지는 모르겠지만... (잠시 끊어진 말 사이로, 조금 더 적절한 단어를 찾아내려는 듯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느리게 뜨곤...) ...오랫동안 널 지켜봤으니, 타인의 기대에 맞춰 살아간다는 게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을지도 모르겠어. (무표정한 얼굴 위로 목소리만 진중하게 흘러나온다. 네 얼굴을 천천히 응시한다.) 네겐 언제나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가 따라다녔으니까. 하지만 그 평가가 실제로 네게 어떤 의미였는지는 한 번도 직접 들어본 적이 없어서 말이지. (말이 끊기고 적안이 네 표정을 살핀다. 관찰하듯 조용히 바라보다 한마디 덧붙이길...) 네 아버지의 기대와 일치하는 것이었대도—... 스스로 무언가를 원하거나 기대한 적은 있었나?
유즈루네, 그럼 여보라고 부를게요. 사실 그게 제일 무난하긴 하죠… 저도 여보가 편해요.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목소리다. 관찰적인 눈초리는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회색 눈동자는 네 얼굴을 훑듯이 바라본다. 말투에서 느껴지는 묘한 기색은…… 아, 너도 긴장이라는 걸….. 하고 있는 걸까.) …… 아아. (뭔갈 눈치챘다는 표정. 큭큭… 작은 웃음소리 흘렸다.) 비밀이라고 말하기엔, 이것또한 애매한 부분이 있잖아요. (이어지는 네 목소리에 다시금 경청하는 태도를 보였다. 늘 타인과 대화를 할 때면, 이런 식으로 흘러갔다. 형식적인 몇 마디를 하고… 이야기를 듣고, 또 그에 맞는 형식적인 말을 던졌다. 일관된 태도로 사람을 대하는 건… 유즈루에게 있어서 공정함을 의미하는 걸지도 모른다. 물론, 예외인 사람도 있기 마련이었지만………) …… 편하죠. 타인에 기대에 맞춰 살아간다는 거요. 판단은 타인에게 맡기면 되는 거고, 저는 행동만 하면 그만이니까요. (… 답지 않은 건조한 목소리다.) …… 결론적으로, 제게 과분한 거예요.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는…… (…) 정말로 제 몫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거 아니겠어요. 결과적으로 제가 좋은 사람이라는 건… 변치 않으니까요. (…… 좋은 사람이라는 기준에, 제 감정이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 … 덧붙이는 말을 끝으로, 너를 바라보던 눈동자를 돌려 주변을 살핀다.) 바라는 거나, 기대하는 것…… (……) … 글쎄요. (느릿한 시선으로 창가 너머로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본다. 답지 않게 말을 흐리는 건, 더 이상의 이야기는 꺼내고 싶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 하하, 죄송해요. 일방적인 취조는 잘 안 맞아서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너 바라본다.) 제 일일 배우자의 비밀도 궁금한데.
센(바라보던 시선이 잠시 옆으로 흩어지다 이내 다시 너의 얼굴 위로 돌아왔다.) ...내 질문이 취조처럼 느껴졌다면 사과하지. 형식에 맞추려다 보니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해. (일순 다시 침묵이 내려앉는다.) 내 비밀이라... (느리게 말끝을 끌었다. 진중히 생각하는 표정, 입술 끝이 미세하게 움직인다.) 그래, 이 얘기는 나도 처음 하는 거지만. (잠시, 뜸...) ...사실 나도 가끔 타인의 평가에 지나치게 민감할 때가 있어. (차분하게 내려앉은 목소리, 무거운 어투 사이에 미세한 숨결이 섞였다.) 완벽한 기준 같은 게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 언젠가는 누군가의 판단이 내 기준을 흔들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같은 거겠지. 그런 점에서, 네가 말한 좋은 사람이란 평가가 실제로 너에게 어떤 의미일지 궁금했었는지도 모르겠군. (적안을 느리게 감았다가 다시금 떴다. 그 사이, 사뭇 평온해진 시선이 네 낯 위에 오래 머무른다.) ...네가 말한대로 평가에 너 자신의 감정이 꼭 들어가야 하는 건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결국 남는 건 자신의 판단이야. 그리고 그 판단을 하는 순간에는, 누구도 아닌 스스로에게 정직할 수밖에 없지. (다시금 입술을 닫고 너의 얼굴을 바라본다. 관찰적인 시선이라기보다는, 어떤 이해를 바라는 듯하다. 어색함을 덜어내려는 듯 작게 숨을 쉬며) 이 정도면 답이 됐을까? ...여보. (여전히 어색한 낱말이었지만, 앞서 말했듯 형식에 맞추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유즈루타인의 평가에 민감할 때가 있다…… (되내리려는, 네가 말한 문장을 입안에 굴렸다.) … 네, 그렇네요. 저도 그런 불안감을 느껴본 적이 있거든요. 완벽에는… 뚜렷한 기준이 없죠. 관념적인 ‘완벽’에 대한 이미지도 사람마다 다른 견해를 가졌을 테니까요. (… 그렇기에 누구나 꿈꾸는 이상적인 모습이라 불리는 거겠죠…) 완벽한 모습을 갖는다는 건, 꽤 많은 관찰이 필요한 것 같아요. 관념적인 기준점을 지키는 것도 좋지만… 때때론 개개인에 따라 그 사람의 기준에 맞는 완벽을 보여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하거든요. (눈 접어 잔잔하게 웃는다.) 말투나, 행동이나… 아니면 소소한 외적 변화라든가, 우리와 같은 사람들은 정해진 기준에 맞춰서 사는 게 더욱 자연스럽잖아요. 누군가의 판단을 위해 맞추는 행위…… 어떻게 보면 스스로를 낮추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하하….. 조금은 우습지 않나요? 누구나 동경하는 완벽이라는 모습을 유지하려면, 결국 자기 자신을 깎는 날이 온다는 거요. 물론, 선배의 말처럼 스스로의 판단도 중요하다고는 생각해요. 그치만……… (……) … 가끔, 절박해야 하는 때가 있잖아요. (저는 그런 순간이 남들보다 많을 뿐이에요…… 라는 말을 작게 덧붙이며, 체크리스트를 손에 쥐었다.) … 네, 훌륭한 답변이었어요. (하하하… 가볍게 웃는 목소리. 소꿉장난 같은 명칭을 부르고, 불리는 모습이 제법 재미있는 모양이다. 만지작, 리스트에 새겨진 활자를 손가락으로 문댔다.) 그럼…… 벌써 두 개는 끝났네요. …… 회장으로서 해야 할 업무가 많지 않으신가요. 이런 소꿉장난을 칠 시간으로 허비하기엔 아까울 텐데… (…) 다른 것도 빨리 처리할까요, 여보?
센...자기 자신을 깎아내야 얻을 수 있는 완벽이라는 거군. (짧게 숨을 내쉬며 미세하게 어깨를 낮췄다.) 하지만 네가 말했듯이, 그런 행동엔 결국 한계가 있겠지. 끊임없이 자신을 깎아내리다 보면... 결국 남는 게 없어질 테니. (말끝이 낮고 단호하게 떨어졌다. 너를 보던 눈동자엔 잠시 상념이 어려, 깊은 의미는 헤아릴 수 없으나 네 말에 이해를 표하는 듯 보인다. 더 말을 잇지 않고 체크리스트로 시선을 옮기며, 어색한 공기를 풀려는 듯 가볍게 입술을 연다.) ...그래, 두 개 정도 끝냈다면 예상보다 나쁘지 않은 성과라고 생각해. 이왕 이렇게 된 거, 순서대로 진행하는 편이 좋겠군.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낮추며, 어색함을 덜어내려는 듯 담담히 농을 던진다.) 이런 소꿉장난도 나쁘진 않아. 간혹 신선한 경험이 필요하기도 하니까. … (잠시 말을 멈추고, 다시금 체크리스트를 훑듯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항목을 짚던 손끝이 잠시 망설이듯 머물렀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깨듯 작게 숨을 들이쉬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너를 마주한다. 네게 한 걸음 더 다가선다. 망설이는 듯, 천천히 손을 뻗어 네 손끝 위에 자신의 손끝을 겹쳤다. 서늘하고 긴 손가락이 가느다란 네 손가락 사이로 느리게 파고든다.) ...실례. (낮고 진중한 음성으로 양해를 구하듯 말하며, 조심스럽게 깍지를 끼운다. 맞닿은 손바닥 사이로 긴장된 맥박이 흐릿하게 전해진다. 이어 천천히 힘을 실어 네 등을 벽 쪽으로 밀어붙이듯 이끈다. 서늘한 벽의 감촉이 너의 등에 맞닿는 순간, 그는 미세하게 가까워진 몸의 거리감에 잠시 숨을 멈춘다.) ...... (마주한 너의 얼굴 위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아주 짧게, 작게 숨을 삼킨다.) ...이런 방식이 맞는지 잘 모르겠군. 당신이 보기엔 어색하지 않나?
유즈루이 게임의 취지가 정략결혼을 대비하기 위한…… (…) 그런 명목의 사교 행사 아니던가요. (물론 그것도 이런 일탈을 정당화하려는 이름인 것 같지만요. 손가락으로 톡, 체크리스트에 적힌 내용을 짚어내며 웃는다.) … 정말 신선한 경험이자 자극이죠. 다른 학생들도 나름 정열적인 태도로 참여하는 것 같던데…… 제 남편도 잘 즐기고 계신 걸까 궁금하네요. 어때요? 회장으로서… 혹은 사카이 센으로서. 아니면 제 남편으로서도… 어떤 입장에서 느끼든 다 좋아요. (가벼운 감상평이라도 듣고 싶어서요, 여보—) (답지 않게 머뭇거리는 태도, 조심스러운 손가락이 느리게 다가오며 제 손끝을 건드리는 감각… 눈 깜빡이며 그 순간을 눈에 담아댔다. 선배의 손은 이런 감촉이구나…… 자신보다 굵은 뼈대라든가, 서늘한 체온과 단단한 표면이라든가, 직접 손에 닿는 촉감과 눈으로 보이는 정보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느릿한 속도감 때문일까, 손을 잡는 행위 따윈 수없이 많이 해왔을 텐데도 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눈동자는 여전히 맞잡은 손으로 가있다. 미약하게 실리는 체중, 이젠 제 체온과 비슷해진 손바닥, 어느새 등 뒤로 닿는 딱딱한 벽의 감촉과 조금 더 가까워진 거리감에 생긴 미세한 그늘짐…… 모든 게 생소했다. 손가락 꼼지락…… 괜히 움직여보며, 네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 방식은 맞지 않을까요? 일단 손깍지도 착실하게 꼈고… 적어도 전, 맞다고 생각하는데. (흐려지는 말끝. 마주한 시선에 느리게 눈 슴벅이며, … 어색하다고 느끼는 건, 우리가 이런 상황에 적응하지 못해서 그런 걸 거예요. 하는 말 덧붙였다.) … 그래. 아까 당신이 순서대로 진행하자는 말을 했었죠. (아마 상대 무릎에 앉기… 였죠? 중얼거리는 목소리, 조금 더 힘을 주어 깍지를 꼈다. 자리를 이동해서 자세를 바꾸고, 다시 다음 과제를 처리하는 것보단 지금처럼 가까운 거리일 때 입맞춤을 해결하는 편이 더욱 효율적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갈 생각하는 듯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리다, 네 눈동자부터 목, 그것을 감싸는 셔츠의 카라… 단정하게 매진 넥타이를 훑고는 다시금 맞잡은 손을 바라본다.) 그럼 저도, 실례 좀 할게요. (… 손에 약간 힘을 실어서 제 얼굴 근처로 끌어낸다.) …… (이후, 제 입술을 네 손끝에 제 입술을 살살 부비다가 꾸욱—… 도장을 찍듯이 눌러 붙였다가, 떨어진다.) 그래요, 그럼— 여보가 제 무릎에 앉는 쪽으로 할까요?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작게 웃는 목소리로 말했다.)
센(네 질문이 끝난 직후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미세하게 가늘어진 눈매가 네 얼굴 위에서 잠시 머물다 천천히 떨어진다. 그의 숨이 미약하게 깊어졌다, 느리게 풀리는 동안 불분명한 감정이 어깨선을 타고 내린다.) ...정략결혼 대비라. (낮게 내뱉은 첫마디. 간결하고 무심한 음성, 생각을 정리하듯 잠시 침묵하며 체크리스트에서 네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짙은 적안이 너의 표정과 눈빛의 미세한 움직임을 좇는다.) .......처음엔 쓸데없는 행사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겪어보니 나름의 의미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말끝이 미묘하게 낮게 가라앉았다. 마지못한 인정과 체념이 섞인 목소리. 잠시 입술을 다문 채 네게서 시선을 돌리다, 다시 네게 시선을 옮겨 천천히 말을 이어간다.) 회장으로선 학생들의 협력과 친목을 독려하는 계기가 된 점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그리고 사카이 센 개인으로서는... (잠시 멈춘 말 사이로 어색함을 떨쳐내려는 듯, 짧게 헛기침을 한다.) 음, 이 정도의 일탈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무심하게 내뱉은 말, 입술 뒤로 혀가 무언가를 굴리듯 입 안에서 몇 번 맴돌다, 천천히 목구멍으로 삼킨다. 이어진 말은 살짝 더 부드럽고 낮은 톤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당신의 남편으로서라면—... 글쎄, 생각보다 더 즐기고 있다고 답하는 게 적당하겠군, 여보. (마지막에 덧붙인 호칭이 낮게 가라앉으며 공기 속에 퍼졌다. 목덜미와 귓가를 스쳐가는 낯설고 어색한 울림. 어쩐지 뒷목과 귀끝이 미세한 열기를 머금는 느낌이 들었지만, 커다란 덩치 덕에 제 등판을 들키진 않을 터다.) (제 손이 이끌리듯 네 입술에 닿는다. 낯선 감각은 그에게 꽤 자극이 됐는데, 그 탓에 반사적으로 미간을 구겼다. 부드러운 살결이 힘주어 눌리고 떨어진 순간, 그의 손끝이 작게 움찔거린다. 당황한 기색을 숨기려는 듯 그의 눈빛이 잠시 바닥을 스쳤다가 이내 네 얼굴 위로 천천히 돌아왔다.) ...네 무릎 위에 앉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서로에게 곤란한 그림이 될 것 같은데. (짧고 낮게 풀어낸 음성이 공기 속에 맴돈다. 간단한 책망의 제스쳐인듯 맞잡은 손등을 들어 네 입술을 꾹 밀어냈다—어떤 사심이 들었는지...— 잠시 네 얼굴 응망하다, 곧 다른 대안을 찾으려는 듯 시선을 옮긴다. 그가 시선을 둔 곳은 가까이에 놓인 장소파, 느릿 네 손을 이끌며 그 소파 쪽으로 발을 옮긴다. 어느순간 맞잡은 손을 떼고 가장 먼거리에 있는 소파 끝에 제 몸체를 앉혔다. 그가 너를 돌아보길) ... 거기 앉아.
유즈루그렇구나, 즐기고 있다니 다행이네요. 그 얘기를 들으면 분명 시미즈 언니와 아야코우지 양도 기뻐할 거예요. (… 하며, 대화의 흐름을 갈무리하듯 잠시 다른 곳으로 시선 돌렸다.) … 사실 전 그닥 내키진 않았던 것 같아요. 단순 사교 행사라고 치기엔 과한 느낌도 있고요. (으음…… 다음 말을 잇기 전에 나직한 입소리를 내다가) …… 뭐, 그래도 결론적으론 저도 꽤 즐기고 있는 것 같아요. 파트너가 너무 익숙한 상대라서 그런가… 하하, 좀 웃긴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더 좋은 것 같기도 하고요. 그도 그럴 게, 지금껏 같이 지내면서 이렇게 둘이서만 대화를 해본 적은 손에 꼽잖아요? (활자로 하는 대화 말고요, 이렇게… 마주 보고 하는 대화요.) 선도부장으로선 절대 인정하기 싫지만… …… 그래요. 사교 행사로선 훌륭한 이벤트였어요. 으응… 아쉽네, 나름 현모양처의 마음으로 고안했던 건데. (큭큭… 짧은 웃음소리를 내던 음성이 네 손등에 밀리는 대로 뭉개진다. 제법 돌발적인 행동이었다. 제 얼굴을 바라보는 낯에 응답이라도 하려는 듯,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제게 다시 닿은 손등… 그건 굳이 할 필요가 없는 행작이었다.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 사람, 의도를 읽으려는 시도가 좀처럼 어려운 사람… 책처럼 펼쳐볼 수 있다면 편할 텐데. 잡다한 상념이 엉킨 눈동자는, 제 손을 이끄는 감각이 느껴지고 나서야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네 걸음을 따라 느릿하게 걷다 보면, 소파가 시야에 담긴다. 곧이어 풀어지는 손깍지. 그리 오래 잡고 있던 손도 아니었는데… 떨어지는 순간, 손가락 사이마다 느껴지는 허전함이 참 기묘했다. 미세한 온기가 남은 손바닥을 괜히 힐끗 바라보다가, 제 귓가에 들리는 가벼운 명령조에 별말 없이 얌전히 자리에 앉는다.)
센...... (무언가 말을 꺼낼 듯 잠시 입술이 움직였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소파 위로 몸을 천천히 눕힌다. 너의 무릎 위에 자연스럽게 등을 기대며 머리를 뉘었다. 허벅지에 머리칼이 흩어지는 감촉에 가늘게 숨을 내쉬었다. 너의 체온과 가까운 거리감 탓인지, 아니면 단순히 몸을 뉘인 탓인지 희미한 심장 고동이 느껴졌다.) ...이 정도면 최소한의 조건은 충족한 셈 아닌가? (위로 향한 시야의 절반이 네 신체로 가려졌으나 크게 개의치 않은 듯 무심히 말을 이었다. 천천히 눈을 한 번 깜빡이고)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짧은 시간이었지만, 남편으로서의 나는 어떤 것 같나? (미약한 장난이 담긴 말투) 피드백이라면—... 어떤 대답이든 기꺼이 받아들일 생각이야. (참고로 두 다리는 손잡이에 걸치고도 한참 남았다...)
유즈루(맨 허벅지에 닿는 머리카락의 감촉이 간지럽다. 무릎 위에 ‘앉기’는 못 되는 행위지만…… 그래도 반은 맞았으니 넘어가도 괜찮은 사항일까. 무게감이 느껴지는 허벅지 위로 잔잔한 박동이 느껴진다. 시선을… 어쩐지 내리는 게 어려운 느낌이 든다. 빠져나온 네 발을 바라보다… 옆에 내려둔 손 느리게 들어, 흩어진 네 앞머리를 정리했다.) 네, 조건의 절반은 채웠으니까… 그런 걸로 둬도 괜찮을 것 같네요. (흘긋…… 가만히 너 내려다보곤) 글쎄요, 어쩐지 결혼 체험이라기엔… 호칭만 그럴싸한 놀이 아니었던가요? (장난기가 섞인 웃음을 짓는 건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하하… 세이란의 회장을 남편으로 둘 수 있어서 기뻤어요. 흔치 않은 경험이잖아요. (뭐… 꼭 그런 게 아니더라도…) 얼마나 훌륭한 남편감인데요? 다정하시고, 대화도 잘 이끌어주시고… ……. 게다가, 스킨십을 하는 손길도 제법 능숙하던데요. (웃음을 지으며 잔머리를 쓸어올리는 손끝은 퍽이나 조심스럽다. 반복적으로 건드리고, 살살 쓰다듬고… 그 행색이 마치 강아지를 만지는 손길에 가까운 것 같기도 하다.) …… 나쁘지 않네요. 꼭 이상적인 부부가 된 것 같고.
센...그래, 호칭만 바뀌었다고 결혼 체험이 될 리 없지. (네 말을 천천히 되짚으며 눈을 뜨고 올려다본다. 입술 끝엔 옅은 농담이 섞여 있다.) 그렇게 말해주니 나쁜 기분은 아니군. 세이란의 선도부장이 내 아내로 있어준 것도 꽤 흔치 않은 경험이니까 말이야. (반쯤 눕다시피 무릎에 기대 있는 자세, 처음의 긴장이 무색하게도 금방 익숙해졌다. 네 손길이 제 머리칼을 쓸어올릴 때마다 피부 위로 미세한 열기가 스쳐 지나가는 기분이다. 섬유가 아닌 사람의 살, 간간이 맡아지는 어떤 향수와 같은 냄새, 퍽 조용한 실내. 나긋하게 이어지는 네 목소리를 가만히 듣는다) ...의외의 평가가 많아서 놀랍군. 이참에 쓴소리라도 한마디 할 줄 알았는데 말이야.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느리고 크게 호흡하여 제 흉부를 조금 부풀리다 다시 낮게 하고...)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좋은 점수를 받은 것 같아서 조금 안심이야. (이어 잠시 침묵이 있다) ... 스킨십이 능숙하다, 라. (........) ...... 그거 꽤 독특한 칭찬이군. (잠시 말을 고르는 듯 눈을 느리게 깜빡인다.) ... 어쨌든... 네가 나쁘지 않았다면 다행일테지. 적어도 누군가의 이상적인 남편 역할을 완전히 망치진 않은 모양이니까. (영 나쁘지 않다. 나쁘지 않다... 무의식적으로 말을 되새긴다. 더 일어날 생각은 없는듯 달리 미동하지 않았다) ... ... 무겁진 않나?